혈액형, 사주, 별자리. 이것들의 공통점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보라는 점입니다. 또한 일상생활에 완벽하게 녹아 있으며 매우 알기 쉽지요. 이들을 이용한 성격유형론은 온세상에 팽배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 모두 유사과학이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특히 혈액형을 이용한 성격론이 마치 상식인 마냥 퍼져 있습니다. ① 누구나 혈액형을 가지고 있어 적용시킬 수 없는 사람이 없고, ② 많은 유형으로 복잡하게 나눌 필요 없이 단 4가지 유형으로만 나누면 된다는 점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당신은 진심으로 혈액형 성격론을 믿습니까?"
하고 진지하게 물으면 언제나 그냥 재미로 하는 거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언제나'요. 제 경험상 이와 다른 대답을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재미로 하는 수준이 아닌데 말이죠. 그러니까, 다들 머리로는 혈액형 성격론이 이도저도 아닌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겠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혈액형 성격론을 맹신하고, 또 퍼뜨리려 듭니다. 누군가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을 때 혈액형을 물어보고,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이미 이런 유사과학적 성격론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아 완벽한 고정관념이 되어 버렸습니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그런 성격론에 대한 정보가 물밀듯 밀려오는 시대가 되면서 그런 현상은 더욱 심화됐죠. 심리학계에서는 당연히 혈액형 성격론은 배제되고 있지만 심리학자, 작게는 심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마저 혈액형 성격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은 그런 성격론들이 너무나도 널리 퍼져 있어서, 아무리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해도 우리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도 말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학계에서는 취급도 못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의 혈액형 성격론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심리테스트와 혈액형 성격론을 완전부정하는 저로서는 정말 탐탁치 않습니다.
사실 이와 관련된 연구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혈액형 성격론에 대한 믿음과 실제 성격의 관계를 알아보는 연구로, A형과 B형의 경우 혈액형별 성격 특징에 대한 고정관념이 더 높고, 실제 성격과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즉 혈액형별 성격론과 실제 성격에 실질적인 관련성이 없더라도, 그런 고정관념이 사람들의 자신과 타인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지요.
도대체 왜 다들 머리로는 가짜라고 알고 있는 혈액형 성격론이 우리 사회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까요. 왜 다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혈액형 성격론을 철썩같이 믿는 걸까요.
먼저, 왜 성격론을 만들고, 받아들이려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앎에 대한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알고, 타인을 알고 싶은 거죠. 인간 심리의 모든 부분은 불확실하기 때문에, 누구나 그것을 명확하게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외부에서 심리에 대한 정보를 탐닉하고 알기 쉽게 정보를 조작하려 하죠. 그로 인해 불확실함에서 오는 불안을 잠재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욕구니까요.
하지만 그 욕구는 어째서인지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한 쪽으로만 자꾸 흘러갑니다. 아마 앞서 설명했듯이 누구나 혈액형을 가지고 있고, 또 매우 간편하고 알기 쉽기 때문이겠죠. 말하자면 과학적인 근거보다는 보편적이고 간편함을 선택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모두들 머리로는 그것이 비과학적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걸까요. 이와 관련지을 수 있는 심리적인 기제들을 몇 가지 뽑아 봤습니다. 왜 우리는 혈액형 성격론을 믿는가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해 주는 개념들입니다.
1. 바넘효과
당신은 행동적이고 붙임성이 있지만 때로는 주의깊고 과묵할 때도 있습니다.
당신은 결단력이 있고 책임감이 강하지만 가끔은 우유부단해지기도 합니다.
당신은 많은 걱정을 안고 살지만 아무런 걱정 없이 즐겁게 사는 면도 있습니다.
당신은 돈에 대해 너무 많은 근심을 가지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문장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나와 딱 맞나요? 아니면 전혀 맞지 않나요?
이 문장들이 만약 기묘한이 아닌 점술가나 어떤 전문가에게서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이것이 바넘효과의 핵심입니다.
바넘효과란, 막연하고 일반적인 성격특징 묘사를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위에 쓰인 문장은 모두 애매모호한 문장들입니다. 또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는 속성들입니다. 따지고보면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가지고 있는 특징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만 생각해 버립니다. 어떤 말이 쓰여있든 그것을 보는 순간 나만의 것이 됩니다. 권위있는 사람에게서 나온 말일 경우 그 정도는 더욱 커지겠죠.
어떤 심리테스트를 한 후 모두 똑같은 결과를 나눠줬더니 대부분이 잘 맞는다고 했다는 유명한 실험도 있습니다.
사실 바넘효과는 이미 인터넷상에서 많이 언급된 것이죠. 요즘엔 심리에 대해 좀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알 법한 개념입니다. 하지만 바넘효과 말고도 우리 무의식에 자리잡은 것들은 더 있습니다.
2. 확인편파
심리테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00% 신뢰할 수 있다? 아니면 어느정도 틀릴 수도 있다?
심리테스트에 대해 기대감을 가진 사람들의 대부분은 틀릴 수도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도 그럴듯이 MBTI같은 검사도 신뢰도가 70% 내외밖에 안 되는데 심리테스트가 100%일 리가 없지요.
즉, 대부분 사람들은 테스트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틀린 부분을 배제하고 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합니다. 결국 주어진 자료를 확인할 때 자기 자신─내지는 자신이 내린 가설과 맞는 부분만을 기억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피하려고 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과 맞는 부분만을 편파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확인편파라고 부릅니다. 확인편파에 의해 받아들여진 '자신과 맞는' 부분들은 이윽고 자기를 이루는 전체 속성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킵니다. 결국 자신과 맞지 않는 부분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심리테스트가 정확하다는 생각이 남게 되지요.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체를 모두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아찔하지요.
3. 자기충족적 예언
혈액형 성격론을 믿는 사람 중에는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내가 봐도 전형적인 ○형이에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혈액형 성격론을 다루지 않는 매체가 없습니다. TV, 라디오, 책, 신문, 인터넷 등등등. 이미 사회적으로 가르침을 받고 있는 상식과도 같은 수준입니다. 우린 언제나 혈액형 성격론을 반복학습하고 있는 셈입니다. 반복학습만큼 효과가 있는 학습법도 없다지요.
사회가 개인에게 특정한 기대를 갖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그 기대에 부응하는 쪽으로 변하려고 노력하는 현상을 자기충족적 예언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믿음이었을지라도, 사회 전체가 그것을 바라고 있다면 자신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변화시키려 하죠.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A형은 이렇다'라는 문구를 매일같이 보고 듣는다면, 그것은 점점 'A형은 이래야 한다'로 변화하고, A형인 나는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게 됩니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당연히 자신의 행동을 사회가 요구하는 단서에 맞춰 가게 되겠죠.
이렇게 되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고 하니,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A형 성격'이 되었다 → 어라, 혈액형 성격론이 진짜 맞네? → 얘들아, A형은 이렇단다. 왜냐면 내가 그렇거든. → 이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A형 성격'이 된다
라는 순환고리가 완성됩니다.
자기충족적 예언은 자신의 행동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 즉 자신과 타인에 대한 평가에도 영향을 끼치죠. 이것은 위의 확인편파와 합쳐졌다고도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설령 실제 성격이 'A형 성격'이 아니라도, 사회에서 기대하는 바대로, 나는 A형이라고 생각하고 평가를 내립니다. 하지만 나에겐 A형이 아닌 특성도 있습니다. 사회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서는 A형에 맞는 부분에만 집중하고, A형과 맞지 않는 부분은 무시합니다. (물론 이런 과정은 무의식 중에 일어납니다)
그러다 보니 진짜로 내가 'A형 성격' 같습니다. 그러면 나는 A형 성격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의 기저에는 A형 성격이 되고 싶다는 욕구도 한몫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도 주위에서 A형은 이렇다 저렇다 하니까 A형 성격을 자신의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설정하는 거죠. 특히 사회적 욕구가 강한 사람들의 경우 더 심하게 나타납니다. 저는 철저한 개인주의자이기 때문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
사실 심리학에서는 A형, B형 성격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물론 혈액형 분류가 아니라 심장질환을 일으키기 쉬운 성질급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을 A형, 그렇지 않은 성격을 B형이라고 하는 거지만요.
그래서 가끔 이 분류의 A, B형을 보고 혈액형 성격으로 착각하는 심리학도들도 여럿 있습니다. 저로서는 좀 씁쓸합니다만...
고정관념과 사회적인 믿음은 정말 무섭습니다. 그 밑에는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져야만 하는 본능들이 숨어있다는 사실도요.
저는 기본적으로 혈액형과 성격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기제들을 보면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일리는 있습니다. 이 경우 혈액형 자체보다는 혈액형 성격론에 대한 고정관념과 믿음이 성격과 관련있다고 하는 게 정확하지만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유사과학과 그에 대한 믿음은 아마 끊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간은 너무나도 불확실한 존재니까요.
"당신은 진심으로 혈액형 성격론을 믿습니까?"
하고 진지하게 물으면 언제나 그냥 재미로 하는 거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언제나'요. 제 경험상 이와 다른 대답을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재미로 하는 수준이 아닌데 말이죠. 그러니까, 다들 머리로는 혈액형 성격론이 이도저도 아닌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겠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혈액형 성격론을 맹신하고, 또 퍼뜨리려 듭니다. 누군가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을 때 혈액형을 물어보고,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이미 이런 유사과학적 성격론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아 완벽한 고정관념이 되어 버렸습니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그런 성격론에 대한 정보가 물밀듯 밀려오는 시대가 되면서 그런 현상은 더욱 심화됐죠. 심리학계에서는 당연히 혈액형 성격론은 배제되고 있지만 심리학자, 작게는 심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마저 혈액형 성격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은 그런 성격론들이 너무나도 널리 퍼져 있어서, 아무리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해도 우리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도 말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학계에서는 취급도 못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의 혈액형 성격론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심리테스트와 혈액형 성격론을 완전부정하는 저로서는 정말 탐탁치 않습니다.
사실 이와 관련된 연구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혈액형 성격론에 대한 믿음과 실제 성격의 관계를 알아보는 연구로, A형과 B형의 경우 혈액형별 성격 특징에 대한 고정관념이 더 높고, 실제 성격과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즉 혈액형별 성격론과 실제 성격에 실질적인 관련성이 없더라도, 그런 고정관념이 사람들의 자신과 타인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지요.
도대체 왜 다들 머리로는 가짜라고 알고 있는 혈액형 성격론이 우리 사회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까요. 왜 다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혈액형 성격론을 철썩같이 믿는 걸까요.
먼저, 왜 성격론을 만들고, 받아들이려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앎에 대한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알고, 타인을 알고 싶은 거죠. 인간 심리의 모든 부분은 불확실하기 때문에, 누구나 그것을 명확하게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외부에서 심리에 대한 정보를 탐닉하고 알기 쉽게 정보를 조작하려 하죠. 그로 인해 불확실함에서 오는 불안을 잠재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욕구니까요.
하지만 그 욕구는 어째서인지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한 쪽으로만 자꾸 흘러갑니다. 아마 앞서 설명했듯이 누구나 혈액형을 가지고 있고, 또 매우 간편하고 알기 쉽기 때문이겠죠. 말하자면 과학적인 근거보다는 보편적이고 간편함을 선택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모두들 머리로는 그것이 비과학적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걸까요. 이와 관련지을 수 있는 심리적인 기제들을 몇 가지 뽑아 봤습니다. 왜 우리는 혈액형 성격론을 믿는가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해 주는 개념들입니다.
1. 바넘효과
당신은 행동적이고 붙임성이 있지만 때로는 주의깊고 과묵할 때도 있습니다.
당신은 결단력이 있고 책임감이 강하지만 가끔은 우유부단해지기도 합니다.
당신은 많은 걱정을 안고 살지만 아무런 걱정 없이 즐겁게 사는 면도 있습니다.
당신은 돈에 대해 너무 많은 근심을 가지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문장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나와 딱 맞나요? 아니면 전혀 맞지 않나요?
이 문장들이 만약 기묘한이 아닌 점술가나 어떤 전문가에게서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이것이 바넘효과의 핵심입니다.
바넘효과란, 막연하고 일반적인 성격특징 묘사를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위에 쓰인 문장은 모두 애매모호한 문장들입니다. 또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는 속성들입니다. 따지고보면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가지고 있는 특징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만 생각해 버립니다. 어떤 말이 쓰여있든 그것을 보는 순간 나만의 것이 됩니다. 권위있는 사람에게서 나온 말일 경우 그 정도는 더욱 커지겠죠.
어떤 심리테스트를 한 후 모두 똑같은 결과를 나눠줬더니 대부분이 잘 맞는다고 했다는 유명한 실험도 있습니다.
사실 바넘효과는 이미 인터넷상에서 많이 언급된 것이죠. 요즘엔 심리에 대해 좀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알 법한 개념입니다. 하지만 바넘효과 말고도 우리 무의식에 자리잡은 것들은 더 있습니다.
2. 확인편파
심리테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00% 신뢰할 수 있다? 아니면 어느정도 틀릴 수도 있다?
심리테스트에 대해 기대감을 가진 사람들의 대부분은 틀릴 수도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도 그럴듯이 MBTI같은 검사도 신뢰도가 70% 내외밖에 안 되는데 심리테스트가 100%일 리가 없지요.
즉, 대부분 사람들은 테스트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틀린 부분을 배제하고 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합니다. 결국 주어진 자료를 확인할 때 자기 자신─내지는 자신이 내린 가설과 맞는 부분만을 기억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피하려고 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과 맞는 부분만을 편파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확인편파라고 부릅니다. 확인편파에 의해 받아들여진 '자신과 맞는' 부분들은 이윽고 자기를 이루는 전체 속성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킵니다. 결국 자신과 맞지 않는 부분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심리테스트가 정확하다는 생각이 남게 되지요.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체를 모두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아찔하지요.
3. 자기충족적 예언
혈액형 성격론을 믿는 사람 중에는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내가 봐도 전형적인 ○형이에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혈액형 성격론을 다루지 않는 매체가 없습니다. TV, 라디오, 책, 신문, 인터넷 등등등. 이미 사회적으로 가르침을 받고 있는 상식과도 같은 수준입니다. 우린 언제나 혈액형 성격론을 반복학습하고 있는 셈입니다. 반복학습만큼 효과가 있는 학습법도 없다지요.
사회가 개인에게 특정한 기대를 갖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그 기대에 부응하는 쪽으로 변하려고 노력하는 현상을 자기충족적 예언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믿음이었을지라도, 사회 전체가 그것을 바라고 있다면 자신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변화시키려 하죠.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A형은 이렇다'라는 문구를 매일같이 보고 듣는다면, 그것은 점점 'A형은 이래야 한다'로 변화하고, A형인 나는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게 됩니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당연히 자신의 행동을 사회가 요구하는 단서에 맞춰 가게 되겠죠.
이렇게 되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고 하니,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A형 성격'이 되었다 → 어라, 혈액형 성격론이 진짜 맞네? → 얘들아, A형은 이렇단다. 왜냐면 내가 그렇거든. → 이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A형 성격'이 된다
라는 순환고리가 완성됩니다.
자기충족적 예언은 자신의 행동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 즉 자신과 타인에 대한 평가에도 영향을 끼치죠. 이것은 위의 확인편파와 합쳐졌다고도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설령 실제 성격이 'A형 성격'이 아니라도, 사회에서 기대하는 바대로, 나는 A형이라고 생각하고 평가를 내립니다. 하지만 나에겐 A형이 아닌 특성도 있습니다. 사회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서는 A형에 맞는 부분에만 집중하고, A형과 맞지 않는 부분은 무시합니다. (물론 이런 과정은 무의식 중에 일어납니다)
그러다 보니 진짜로 내가 'A형 성격' 같습니다. 그러면 나는 A형 성격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의 기저에는 A형 성격이 되고 싶다는 욕구도 한몫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도 주위에서 A형은 이렇다 저렇다 하니까 A형 성격을 자신의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설정하는 거죠. 특히 사회적 욕구가 강한 사람들의 경우 더 심하게 나타납니다. 저는 철저한 개인주의자이기 때문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
사실 심리학에서는 A형, B형 성격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물론 혈액형 분류가 아니라 심장질환을 일으키기 쉬운 성질급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을 A형, 그렇지 않은 성격을 B형이라고 하는 거지만요.
그래서 가끔 이 분류의 A, B형을 보고 혈액형 성격으로 착각하는 심리학도들도 여럿 있습니다. 저로서는 좀 씁쓸합니다만...
고정관념과 사회적인 믿음은 정말 무섭습니다. 그 밑에는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져야만 하는 본능들이 숨어있다는 사실도요.
저는 기본적으로 혈액형과 성격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기제들을 보면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일리는 있습니다. 이 경우 혈액형 자체보다는 혈액형 성격론에 대한 고정관념과 믿음이 성격과 관련있다고 하는 게 정확하지만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유사과학과 그에 대한 믿음은 아마 끊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간은 너무나도 불확실한 존재니까요.




덧글
SilverRuin 2009/09/02 13:39 # 답글
이오공감 거부 표시를 찾지 못해서 이오공감에 추천하였습니다.<B형 남자친구>라는 영화 덕에 이유도 없이 놀림 받았던 게 기억나네요.
기묘한 2009/09/02 14:50 #
감사합니다.저도 B형이에요. B형이라고 놀리는 사람들에게 혈액형 성격론의 비과학성을 차근차근 설명하면 꼭 돌아오던 답변이 있습니다. "네가 B형이라서 그래"
2009/09/02 15:02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기묘한 2009/09/02 19:15 #
TVN이 원래 좀 저질이더군요. 아마 그 무당들 가짜일걸요. -ㅅ-;
개념탑재 2009/09/02 15:17 # 답글
수혈할 때나 활용되는 혈액형을 인간분류의 용도로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코메디죠. 저도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향을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비과학적인가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 했지만, 가장 많이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 재미로 하는 거잖아~ 누가 진짜로 믿냐?'라는 것이더군요.하지만, 농협 한밭사업단에서 소심하다는 이유로 A형과 AB형에게 응시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선 혈액형의 사회적 영향력은 이미 '재미' 단계를 넘어섰다는 걸 알 수 있죠.
기묘한 2009/09/02 19:17 #
그게 무서운 겁니다. 재미, 재미라고 과민반응하면서도 하는 행동은 재미가 아닌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피빛까마귀 2009/09/02 16:26 # 답글
B형이 하도 성격 드럽다 드럽다 하다보니 B형 얘기만 나오면 당연히 성질이 나는것을 ( 솔직히 자기 성질이 더러울 것이다 라고 하면 누가 좋을까요? )역시 B형, 이 지랄을 하고 있으니 ㅋㅋㅋ B형 인간들의 정신적 피해보상을 청구해야 할듯요!
기묘한 2009/09/02 19:24 #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상종하지 않는 게 편하지만 전 사람을 다루는 걸 배우고 있다 보니 이해할 수밖에 없어요...전 그래서 처음부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에니어그램을 밀고 나갑니다. 으흐흐;
피빛까마귀 2009/09/02 16:27 # 답글
사실 4가지 방법으로 사람의 성격을 다 나눈다는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건지 다 알겠지만 한국에서는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죠'
기묘한 2009/09/02 19:25 #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는지 한번 알아보고 싶습니다.
J H Lee 2009/09/02 16:50 # 답글
사실 개인의 정치적 성향은 유전적 결과입니다?혈액형 얘기는 이거하고 다를바 없죠.
기묘한 2009/09/02 19:31 #
그걸 모든 사람이 알면 좋을텐데 말이죠.
머스타드 2009/09/02 17:35 # 답글
저 자신은 믿지 않고 관심도 없지만 여자와 대화하려면 알 필요는 있어요;;;
기묘한 2009/09/02 19:33 #
전 그런거 몰라도 대화에 곤란하진 않던데요;
머스타드 2009/09/02 21:11 #
물론 몰라도 대화에 곤란하진 않지만, 하다못해 그런거 믿을게 못된다는 얘기라도 하려면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죠...;;;
messenger 2009/09/02 17:40 # 삭제 답글
우연히 들어와서 본 글인데 정말 좋네요결국은 혈액형이 아니라 고정관념
혈액형으로 따지기엔 우리 각자 소중한 존재 아닐까요?? 감사^^
기묘한 2009/09/02 19:37 #
본문에선 혈액형 성격론의 허구성에 대해서 다루지 않았는데 댓글에서 논점이 벗어나서 어라, 하던 참이었는데 반가운 댓글 감사합니다. -ㅂ-;우린 정말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각자 가진 상처가 있고 짊어진 짐이 있는데 그걸 보고 이러 욕하고 저리 욕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사유 2009/09/02 19:09 # 답글
이뭐 전 비형인데 혈핵형 훼이크를 잘써먹는 편이거든요. 한번은 어떤여자가 혈핵형을 물어보길래 ' 오형이라고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오형성격을 저한테 때려맞추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ab형이라고 했더니 '역시 ab형은 싸이코같은데가 있네'라고하길래 사실은 b형이라고했더니'그래서 까칠하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묘한 2009/09/02 19:39 #
그래서 전 상호배타적인 기질론이나 성격유형론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니 그게 말이 되나...
Rei 2009/09/02 22:14 #
ㅋㅋㅋㅋ
어쨌든 2009/09/02 20:43 # 삭제 답글
내 주변의 A형이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인간들은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고 끈질기고 통도 크고 영리한(되바라진)인간이 대부분이더라.
책에 적혀있는 대로 소심한 인간은 눈씻고 한번도 못봤어 이런. 난 B형
기묘한 2009/09/02 21:31 #
난 공교롭게도 A형이 어떻다더라, B형이 어떻다더라 하는 건 잘 모른다. 단지 B형이 쓰레기 취급 받는다는 것만 알지. 그래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그런데 생판 모르는 남 블로그에 익명으로 찾아와서 반말하는 거 아니다.
2009/09/02 21:31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기묘한 2009/09/02 21:45 #
그런 일들 모두가 처음에 말했던 '자기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죠. 이 글을 쓴 저도 그런 함정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나저나 에니어그램을 알아보시다니! 전 MBTI보다 에니어그램을 훨씬 좋아해서 그쪽으로 마구 파고들고 있는 중이랍니다. 얼마전엔 강사 자격까지 따 버렸어요.
뭐 적어도 혈액형보다는 믿을 만하지요. 그리고 상호배타적이지 않고 통합적인 유형학이라는 점도 매력입니다.
염치불구하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저 도형 자체가 에니어그램이고, 1-4-2-8-5-7로 이어지는 육각형의 이름이 헥사드랍니다;;
액시움 2009/09/02 21:49 # 답글
"네 혈액형 무슨 형이야?""우리 형!"
이러면 신나게 두드려 맞지요.
옝, 뻘플은 여기까지고, 사실 혈액형 운운하면 좀 과학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은근히 신빙성이 있게 들리기도 하지요. 믿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상대가 오류를 지적해줘도 쉽게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말씀하셨다시피 말로는 다들 안 믿는다고들 하지만...) 게 더 심각하다고 봅니다. 게다가 그걸 반복하다보니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이 세뇌가 되어서 B형인 사람만 봐도 불편하게 굴어대고, 그것 때문에 B형인 사람이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이면'B형은 역시 까칠해' 이러면서 무한루프...
기묘한 2009/09/02 22:21 #
그런 악순환도 있지요. 확실히 혈액형 자체는 과학이긴 하지만 성격론으로 들어가면 '과학적'의 의미가 다른지라 이거 설명하려면 저도 골머리를 앓곤 합니다;
2009/09/02 22:53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기묘한 2009/09/02 23:49 #
그런 우연도 겹쳐서 더 신봉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latro 2009/09/02 23:16 # 답글
어떤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인간 본성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유사과학적 성격론은 이것을 아주 간단하게 해결해주니 매혹적이지요.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기묘한 2009/09/02 23:52 #
감사합니다.본문에서도 적었듯이 지금 가장 신뢰도 높은 검사들도 기껏해야 70% 정도가 한계인 데다 '당신은 이렇다'라고 딱 잘라 말하지 않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훨씬 확실한 걸 추구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관련된 학문을 하는 입장으로서는 씁쓸하지요...
에인샤르 2009/09/03 14:38 # 답글
혈액형별 성격을 부정하면 꼭 되돌아오는 질문이 있지요... '너 B형이지? '부정하는 사람의 혈액형이 언제나 B형이진 않을테지만 사람들은 B형일때만 기억하고...
다시 이렇게 말하지요... '항상 그런거 부정하는 애들보면 B형이더라?'
이래도 재미로 알아보는 혈액형이라고 할테냐? 라고 묻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ㅡ.ㅡ;;
기묘한 2009/09/03 20:47 #
그것도 확인편파라고 할 수 있겠죠.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는 게 더 슬픕니다.
앨리스 2009/09/03 19:10 # 답글
오랜 담론임에도 항상 찜찜한 기분이 들었는데 모처럼 명쾌하게 쓰여진 글을 만났네요.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확인편파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서점에 널린 혈액형에 대한 책들을 보면서 재미를 넘어선 신흥종교같은 느낌이 들어 거부감이 컸는데. 추천하고갑니다.
기묘한 2009/09/03 20:48 #
저야말로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종교계에서 혈액형 성격론을 악용하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
타임워커 2009/09/03 20:29 # 삭제 답글
복잡한 인간의 심리를 단 네가지 성향으로 분류가능하다는 그 심플함에 끌리는거 아닐까요?심리학이라는 분야가 일반인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왠지 심리학을 배우면 상대의 속마음까지 다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니까요.
'저 인간은 성격이 대체 왜 그럴까'하는 궁금증에 '아, 혈액형이 X형이라서 그랬구나'하고 수긍할 수 있는 그 경쾌함이 혈액형점의 인기요인이라 생각합니다
기묘한 2009/09/03 20:55 #
심리학은 독심술이 아닌데도 자꾸 사람들은 심리학에서 독심술을 원하지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습니다.혈액형 성격론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인과관계가 잘못됐다는 점인데요, 예를 들어 MBTI를 보면 평소의 행동과 생각에서 유형을 끄집어내는 반면 혈액형은 반대로 혈액형에서 행동양식을 끄집어내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게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수긍을 받게 됩니다.
분명 간결성은 좋은 심리검사의 준거 중 하나지만 혈액형 성격론에서는 그게 도를 지나치는 데다 다른 요소들(타당성, 발견적 가치, 내적 일관성, 포괄성, 기능적 의미)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지나친 간결성이 오히려 인기를 불러와 버렸지만요...
삼천포 2009/09/03 22:04 # 답글
잘읽었습니다 제가 재미있게 생각하는건유사과학적 성격의 물건의 역사가 유구하단거죠
사람 사는건 다 같은건가봅니다 [웃음]
기묘한 2009/09/03 22:11 #
점성술같은 건 정말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죠. 사람 사는 건 다 같은 건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