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16일
심리테스트에 속지 말자
꽤나 오래전부터 'FBI에 검거된 연쇄살인범들이 받는 심리테스트' 등의 제목으로 퍼지고 있는 영상. 영상 뿐만 아니라 텍스트로도 역시 퍼지고 있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신기한 '검사'이다.
'검사'에 따옴표를 쳐 놓은 이유는, 이것이 모르는 사람에게만 '검사'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퍼질 대로 퍼져서 모르는 사람은 적겠지만.
대충 배웠다고는 하나 나름대로 3년간 상담심리학을 배워 온 기묘한의 입장으로서는 영 씁쓸할 따름이다. 때로 일반인들에게 이 문제를 내서 재미를 돋굴 수 있는, 이른 바 '전공자들의 특전' 같은 물건이었는데 언제부터 이게 퍼지게 된 건지 알 수 없다. 게다가 FBI라는 요상한 단어까지 붙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FBI가 어쩌고 한 인간 엿이나 먹으라고 그래라. 이건 FBI에서 살인마들에게 실시하는 검사 따위가 아니다. FBI가 뭐가 아쉬워서 살인마한테 하는 검사를 세상에 내놓겠는가.
그럼 살인충동을 알아보는 보통의 심리테스트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건 심리테스트조차도 아니다. 단순한 심리학적 문제일 뿐이다.
항간에는 이 문제가, 정신분석을 만든 프로이드가 제자들에게 낸 문제라고도 하고 아인슈타인이 낸 문제라고도 하는데 진실 여부는 나도 모른다.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프로이드나 아인슈타인같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낸 문제라면 적어도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언론과 매체에서 다뤄졌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인슈타인은 접할 기회가 없어서 모르겠으나 프로이드에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어 보아도 프로이드가 이런 문제를 냈다는 사실은 기술되어 있지 않다. 다만 자기가 생각해 낸 양 당당하게 써먹는 사람을 몇 목격했을 뿐이다.
사람들이 심리학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심리테스트와 같은 환상이다. 심리학을 배우면 마치 독심술처럼, 간단한 테스트 하나만 가지고도 그 사람의 면면을 파악할 수 있겠지, 하는 오해다.
이런 환상을 품었던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열댓문제 정도 답하게 한 다음 결과에 '당신은 심층심리에 이러저러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해 두고 그걸로 끝인 심리테스트 가지고는 사람 턱 끝에 난 점에 돋은 털 한 돌기의 심리도 알아낼 수 없다. 인터넷에 떠도는 '심리테스트'들은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고, 신뢰도, 타당도 역시 불확실하다. 심리학을 깊이 공부한 학자들은 이런 심리테스트를 보면 가장 먼저 하는 게 비웃는 일이다.
애초에 심리'테스트'라 함은 문장 몇 개 나열해 놓고 상대방 심리를 그저 떠보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누가 만드는지는 모르지만 심리테스트를 만든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대중들이 심리테스트라는 생소하고도 신비한 영역에 퍼덕퍼덕 낚여서 '꺅, 진짜 정확하다. 소름 돋았어'라며 들썩이는 것을 지켜보며 마치 신이라도 된 마냥 우월감에 젖어들 뿐. 그걸 가지고 정말로 상대의 마음을 분석하고 심층심리를 꺼내고 지금의 행동의 원인을 찾으려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분석하고 심층심리를 꺼내고 지금의 행동의 원인을 찾기 위한 학문이다.
심리테스트는 사실 점과 같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결과는 그럴 듯하지만 그 과정과 이유는 깡그리 무시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과학적이지 않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과학이란 곧 '경험'이다. 즉 실질적인 경험에 의해 검증해 가는 것이 과학이다.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과학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학적이지 않다는 말은 즉 그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경험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심리학을 배우면 심리테스트는 배우지 않는다. '심리검사'를 배운다.
현재 심리학계에 존재하는 모든 심리검사는, 쉽게 비유해서 말하자면 충분한 알파/베타테스트를 거쳐서 그 문화 실정에 맞게 표준화시킨 검사들이다. 외국의 검사를 한국에 들여온다면, 애니메이션으로 예를 들면 한국어로 새로 더빙하고 한국 문화에 맞게 자를 데 자르고 넣을 데는 새로 넣는 작업이 필요하다. 검사를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검사를 가능한 여러 사람에게 시험해서 신뢰도와 타당도를 검증해야 하고, 이렇게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검사의 결과조차도 절반도 그대로 믿을 수 없다.
그런데 단지 흥미위주로 만들어진 심리테스트의 결과 따위에 연연하며 심리학에 대해 환상을 가지는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해질 따름이다.
심리테스트들이 꼭 이용하고 있는 법칙이 있다. '바넘효과'라는 놈이다. 들어본 사람 많을 것이다.
바넘효과란 모든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성질을 자신만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이런 실험을 했다.
여러 명의 피험자들에게, 각각 똑같은 가짜 심리검사를 실시한다.
모든 피험자들에게는 똑같은 검사결과를 나누어 준다. 이 결과지에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성질들만 나열되어 있다.
피험자들은 이 결과에 매우 놀라워하며 검사가 정확하다고 평가한다.
심리테스트는 모두 이 법칙에 의해서 움직인다. 나중에 심리테스트를 접할 기회가 있으면 한번 찬찬히 살펴봐도 괜찮다. 특정유형에게만 해당되는 특수한 이야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가장 많이 파고든 것이 바로 혈액형 점일 것이다. A,B,O,AB의 네 가지 혈액형을 두고 이 네 유형의 성격을 나누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혈액형 점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이 일반적인 사항이다. 특수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그 중에서 어떤 건 맞고 어떤 건 맞지 않는다. 꼭 자신의 혈액형이 아니더라도, 다른 혈액형도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맞는 내용도 있고 아닌 내용도 있다.
인간은 이런 테스트를 거치면 맞는 것에만 집중하는 성향이 있다. 혈액형 점에서 맞는 내용은 잘만 기억나는데 틀린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혼돈이 일어난다.
지금 가장 보편화된 성격유형검사인 MBTI도 16가지의 유형이 있다. 에니어그램도 18가지의 기초유형이 있다. 그런데 딸랑 네 개로 사람 성격을 구분하겠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느 나라 발상인지 원. 게다가 이거 믿는 데가 우리나라랑 일본밖에 없다면서.
혈액형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도대체 왜 혈액형 점을 믿고,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가?
기묘한은 B형이다. 애초에 나는 혈액형 점 같은 건 하나도 안 믿기 때문에 B형이 구체적으로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인간으로서 최악인 요소는 다 갖추고 있는 모양이다. 몇년 전에 B형 남자가 어쨌네 하는 영화도 있었고, 노래도 있었다. 개그콘서트인지 뭔지에서는 이거 갖고 개그소재로도 써먹은 모양인데, 남들 다 웃는데 나만 못 웃겠더라. 뭔 말인지 알아먹어야 웃지. 여기서도 B형은 좀 뭐시기하더라.
그렇다. 혈액형 점에서 주로 나쁘게 표현된 게 바로 B형이다. 아니 점을 치려면 좀 동등하게 쳐야지, 내가 B형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닌데 왜 B형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은 꼭 혈액형을 물어 보는데, 내가 B형이라고 대답하면 반드시 안색이 굳어지며 잠시 말을 잃는다. 속으로는 지금까지 이런 인간하고 알고 지냈단 말인가, 하며 부글거리고 있겠지. 알고 지낸지 얼마나 됐다고... 그리고 기묘한은 그런 사람은 반드시 멀리하게 된다. 이건 내가 의도적으로 멀리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마음이 그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심리테스트는 결코 믿어서는 안 된다. 각종 사기에 걸려드는 건 이런 걸 믿는 것부터 시작한다. 바넘효과 때문에 신비한 감정만이 앞서서 냉정한 판단력을 잃기 때문이다.
위 문제에서 정답을 맞춘 사람이 소수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사람이 비정상이라거나 살인충동을 가졌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단지 정상분포의 일정 범위에서 벗어나 있을 뿐이다. 따지고보면 정신분석학적으로 말하면 누구나 심층심리에 살인충동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김전일이나 코난 같은 추리력 좋은 사람이 정답을 맞춰도 살인자라고 할 것인가? 물론 진짜로 김전일과 코난이 존재한다면 살인자라고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건 일단 제쳐두고. 이 문제로는 진짜 살인마를 가려내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세계 규모의 수사기관인 FBI가, 요런 자잘한 테스트 하나로 살인마인지 아닌지 알아내려고 할 것 같은가?
사람 심리라는 건 너무나도 복잡해서, 작은 조각 하나를 건드리기 위해 십수년을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겨우 알아낸 조각도 있는 그대로 믿지 않는다. 그런데 누가 만든지도 모를 테스트로 사람 심리를 알아내고 성격을 구분지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적어도 지금의 심리학으로는 절대 못한다. 지금 나도는 심리테스트는 한마디로 개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냥 너무나도 할 일이 없을 때 한번씩 해보고 아 그렇구나- 하고 잊어버리면 된다.
그리고 이 글 역시 너무나도 할 일이 없어서 한번 써 놓고 아 그렇구나- 하고 잊어버리기 위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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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1/16 23:57 | 상담, 심리, 그리고 인간 | 트랙백(4)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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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많은 심리 테스트가 있고, 이 중에는 악의를 갖고 만들어진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나온 게임 중독증 테스트, 오타쿠 테스트 등을 예로 들 수 있는데 테스트의 문항들은 인간 말종을 그려내고 있지요. 그 이면에는 '게이머'와 '오타쿠'라는 특정 카테고리를 명백히 비난하는 의도를 품고 있습니다. 이런 테스트는 4대 일간지에서도 가끔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으로 보는 사람 상당수에게 '그들이 원하는 특정 의식'을 심어줄 수 있지요. 심리 테스트를 다 믿고 앉아있으면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결과적으로는 기묘한 님의 글과 똑같은 내용을 다루고 말았네요. 물론 기묘한 님께 말씀 드리기 위해 적은 리플은 아닙니다. 그저 사족을 다는 의미랄까요.
혈액형 부분에서 정말 공감합니다. 전 세계를 4가지로 나누어서 성격을 본다는 게 정말 '과학적'인지 의문이 들더군요. 가끔씩 혈액형에 따른 성격 같은 거 따지는 친구 보면 조금 씁쓸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을 공부하지 않고 한사람으로서 가~끔씩 심리테스트하면서 가볍게 노는 것은 재미있습니다;; 물론 맹신하면 안되지만요.
가볍게 재미로 보고 넘어가면 좋을텐데, 그것을 넘어 맹신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서 답답합니다.
"사람이 무슨 양산형 로봇도 아니고..."
스스로 공장에서 양산된 로봇이 되고싶은 사람이나 믿는거라 생각합니다.
왜 괜히 심리학도가 있겠습니까 사람의 성격을 개나소나 다 맞출수 있다면 그야말로 판타지죠
그런 재미로 보면 괜찮을꺼 같아요. 맹신은 문제죠...
아.. 얼마전에 소개팅 나갔다가.. 상대방 남자가 혈액형이 뭐냐고 묻는바람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_-;
그런거 믿는 사람이 있구나..
......이 부분에서 뒤집어졌습니다 OTL
그런데 정말 심리학 공부하시는 분들 많이 계시네요. 깊이 배울 기회도 없는데도 이렇게 글쓴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아주 가려운 곳 긁어주는 시원한 글 이군요!
혼자읽기 아까워서 제 홈페이지로 좀 모셔갑니다.(__)